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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
<칼럼>생명을 경시하는 사회 이성섭 (경기환경문제 연구소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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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지나치게 생명을 경시하고 무책임하게 행동하는 풍조가 사회에 만연되어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못해 서글퍼지는 것 같다.
며칠 전 20대 가장이 경마와 노름으로 진 빚 3500여 만 원으로 고통을 받다가 5,6세 배기 두 자녀에게 수면제를 먹인 후 강물에 던져 익사했다는 신문 기사와 죽은 시체를 건져 올리는 애처로운 모습을 보면서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왜 이처럼 생명경시 풍조가 극치를 이루고 있는 것일까
수능 시험 성적이 나쁘다고 비관하여 10층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하는가 하면 학교 성적이 나쁘다고 자살하는 초등학교 학생이 있었다는 신문기사에서는 너무나 허망함을 금할 수가 없다. 살아계신 부모님 앞에서 목숨을 끊는 것은 가장 큰 불효라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효 문화와 가정의 질서와 윤리는 다 어디로 가고 이처럼 냉혹하고 삭막한 사회 속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해 지는 것 같다.
내 목숨은 그렇다 치고라도 남의 목숨을 하찮게 생각하는 살인 행위가 그저 장난하듯 벌어지는 우리 사회의 병폐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옛날 우리 조상들은 우물을 파도 집에서 좀 더 멀리 파 놓았다고 한다. 우리 며느리들이 어려운 살림에 자살 충동을 느끼더라도 생각할 여유와 시간을 벌기 위해 우물을 집보다는 더 멀리 파 놓았다는 조상들의 지혜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가슴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는 옛날 스님들이 초봄에 푹신한 짚신을 신고 나 다녔는데 그것은 무심코 땅위에 살아가는 벌레를 밟았을 때도 그 미물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배려였다고 했으니 조상들의 자연 사랑 정신과 생명 존중 사상이 생활 속 깊이 배여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사랑을 베푸는 것이고 지금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환경보존을 위한 작은 실천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때의 스님들은 환경파괴적인 측면보다는 생명존중에 더 큰 의미를 두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인류에게 시급한 과제는 파괴되어 가는 인간성 회복문제라 할 수가 있다. 지금까지 인간이 너무 물질적인 면만을 추구했던 나머지 인간성을 상실해 버려 마치 금수와 다를바 없는 행동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으면서도 거기에 대한 죄책감과 반성이 없는것이다.
환경문제의 근원은 생명 존중이고 모든 생명체가 홀로 존재할 수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근본 생명은 오직 하나로써 엉켜 있는 생명체임을 알아야 한다.
바로 환경운동과 자연관은 우주만유를 하나의 생명체로서 보고 상호 의존하는 생명 존엄성을 가지고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자는 것이다. 이처럼 지나치게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되고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자연을 너무 경솔하게 생각하고 물질위주의 욕구 속에 살아 온 우리의 그릇된 생활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생태위기의 본질은 자연 속에서 인간의 위치에 관한 반성과 참회 그리고 본연의 시각을 갖는 것을 필요로 한다. 환경문제는 인간이 자연과 어떻게 관계하느냐가 문제이고 나가서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이 자연을 언제나 지배와 정복의 대상으로만 보는 생각을 버리고 과연 생명이 무엇인지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자연에 대해서도 겸손하고 자연섭리에 순응해 나가는 마음가짐이 더욱 필요한때이다 라는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있기 위해 네가 필요하고 자연이 건강할 때 우리 생명이 존재 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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