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행동연구소 안병옥 소장

최근 기후변화를 단순한 ‘적응(adaptation)’의 울타리를 넘어 ‘위험 관리(risk management)’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기후변화는 국가적·세계적으로 분배갈등을 일으키고 통제 불가능한 사회적 붕괴와 폭력의 증가 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지구공동체의 안녕을 위협하는 핵심 리스크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제사회가 온실가스 감축에 실패한다면 21세기 중반부터 정치경제적 불안정성이 심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최근 나온 보고서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지난 1월 16일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이 발표한 ‘2014 세계위험보고서(Global Risks 2014 Report)이다. 이 보고서는 총 31개의 리스크를 경제·환경·지정학·사회·기술 등 5개 범주로 분류한 다음 위험 요소가 가장 높은 세계 10대 리스크를 선정했다. 여기에는 물 위기, 기후변화 완화 및 적응의 실패, 홍수·폭풍·산불 등 극한기상현상의 대형화 등 기후변화와 긴밀하게 연관된 환경 리스크 3개가 포함되었다.

지난 3월 31일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제2실무그룹의 ‘기후변화의 영향, 적응, 취약성’ 보고서(제5차 보고서) 역시 기후변화를 ‘인도주의의 위기(humanitarian crisis)’로 인식하고 있다. 6년 전 발간된 제4차 보고서에서 40여 차례 쓰였던 ‘위험(risk)’이라는 낱말은 이번 보고서에서는 무려 230회나 등장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휩쓴 소요사태가 보여주듯이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 생산량 감소는 곡물가격의 폭등과 그에 따른 정치적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 기후변화가 빈곤 및 경제적인 충격과 결합될 경우 전쟁과 대규모 난민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IPCC가 기후변화와 전쟁·분쟁의 상관관계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다드앤푸어스(S&P)는 5월 18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는 개별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에 타격을 줄 수 있으며 국가신용등급을 매기는 중요 변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세계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글로벌 메가트렌드로 ‘고령화’와 ‘기후변화’를 지목했다.

현재의 경제모델들이 기후변화의 피해 비용을 크게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주목할 만하다. 세계적인 기후 경제학자 스턴 경과 그의 동료들은 지난 6월 16일 발표한 한 논문에서 “재난 수준의 기후변화 피해를 가정하지 않는 과거의 ‘역동적 통합 기후-경제(dynamic integrated climate-economy)’ 모델(일명 Dice 모델)은 기후변화 피해의 규모를 반영하는 데 실패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온실가스를 과감하게 감축하지 않을 경우 금세기 후반부터는 세계인들의 삶의 질은 전반적으로 낮아지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기후변화 리스크 관리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리스크는 개인, 지역, 국가, 세계 등 공간적인 스케일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며, 주관적으로 인지하는 위험이 객관적 위험도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리스크와 불확실성에 대한 정의가 학문적으로 통일되어 있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특히 ‘기후위험(climate risk)’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분류체계는 국내외를 통틀어 존재하지 않는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효과적인 리스크 관리를 위해서는 개별 리스크의 복합적인 연관성과 연쇄효과(cascade effect)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특정 영역에서 나타나는 리스크는 동일한 시스템의 다른 영역으로 파급될 수 있으므로 개별 리스크의 단계적 발전 양상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후변화 리스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 걸쳐 나타나는 ‘복합 위험’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메가트렌드들의 상호작용에 대한 분석이다. 예컨대 고령화 또는 양극화가 기후변화 위기 대응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과 기후변화 위기 대응이 동반하는 사회적 웰빙과 복지 수준 향상의 편익에 대한 분석은, 기후변화 위험 관리의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세 번째는 공공기관과 민간조직의 적절한 역할 배분과 협력 방식의 정착이다. 거버넌스를 통한 기후변화 위험 관리의 전제는 충분한 정보 제공과 활발한 의사소통에 있다. 특히 기후변화 위기 대응의 주체가 정부와 지자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계 민간조직 활동 분석기관인 SIGWatch가 2009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 대응은 세계 NGO들의 활동에서 1, 2위를 차지할 정도로 그 비중이 크다. 따라서 다양한 대화·소통 채널 구축과 정보 제공을 통해 민간부문의 기후변화 위험 관리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과 ‘안전’의 가치를 소홀히 해왔던 경제성장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패러다임 전환이 단시일 내에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GDP에 편중된 국가운영 지표의 불균형은 교정되어야 한다. GDP가 지니는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적인 지표를 개발해 적용하고, 제2차 국가기후변화적응대책을 국가 리스크 대응의 관점에서 수립할 필요가 있다. 에스키모 원주민들의 기후변화 대응활동을 이끄는 실라와트-클루티어(Sheila Watt-Cloutier)의 말처럼, 기후변화 위험이 가시화하고 있는 지금은 ‘인간의 얼굴을 한 기후변화 대응’이 절실한 때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