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생선은 인류에게 맛과 영양을 제공하는 주요 식재료 중 하나였다. 그러나 물 아래 바다의 유한함이 보이지 않기에 죄책감이 덜 들은 탓일까? 급증하는 인구와 기술의 발전은 남획으로 이어져 최근 50년간 해저 생태계는 황폐해지고 연어, 가자미, 황새치와 참치 등의 대어는 90% 이상 사라지게 되었다.

어획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택한 방법은 양식이었다. 그러나 인위적인 방법으로 어류를 키우고 공급하는 과정은 해저 생태계 내 파괴되는 먹이사슬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했고, 오히려 수질 오염과 각종 비효율적인 문제를 발생시켰다. 식탁에 오르는 생선의 맛과 질이 떨어지게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와중에, 뒤틀린 사람과 물고기의 관계에 해답을 제시한 기업이 있다. 베타라팔마(Veta La Palma)라는 양식장이다.

자연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다 : 베타라팔마의 설립

스페인 남부지역과달키비르강 하류지대에 위치한 베타 라 팔마는 28,000에이커(강남구의 3배이상의 면적)의 거대한 습지이다. 1980년대까지 이 양어장은 아르헨티나 사람들 소유였다. 당시에는 늪지대에서 목축업을 하기 위해 복잡한 수로를 만들어 습지의 물을 빼내는 작업을 했으나 이 같은 방법은 실패로 돌아갔다. 사업적으로 경제성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환경적 재앙을 가져온 것이다. 지역에 서식하던 새들의 90퍼센트가 죽었고, 이 지역의 생태계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82년, 친환경적 경영으로 유명한 PIMSA라는 스페인 회사가 베타라팔마를 매입하고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물을 빼내던 펌프를 이용해 필요한 바닷물을 다시 끌어들여 수로를 범람시키고 양식장을 만든 것이다. 바닷물에 들어있는 미생물과 해조류를 통해 농어, 숭어, 새우, 장어 등을 최대한 자연적인 조건에서 양식하며 생태계가 원활하게 돌아가자 희귀한 새와 각종 수중 식물들이 번식하기 시작했다. 현재 베타라팔마를 바라보면 수로들 사이로 차오른 물과 자연이 만나 형성된 비옥한 습지가 광활하게 펼쳐져 흡사 자연 보호 지구에 온듯한 느낌이다.

양식장인 듯 양식장 아닌 양식장 같은 양식장 : 베타라팔마만의 특색

베타라팔마는 사실 겉모습 외에도 전혀 양식장 같지 않은 방식으로 운영되는 양식장이다. 먼저, 키우는 물고기에게 사료를 주지 않는다. 수산 양식업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사료 적정 비율이다. 참치양식의 경우, 작은 물고기나 플랑크톤을 사료로 줘야 하는데 양식을 위한 사료의 적정비율이 15:1라고 한다. 즉, 자연산 생선 15kg를 사료로 주어야만 양식 참치 1kg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율은 어디까지나 기준치인 것이고, 양식 환경에 따라 소비되지 않는 사료는 썩어서 수질을 오염시킬 가능성이 있다. 경제적인 부분과 환경적인 면에서 비효율적인 부분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베타라팔마에서는 무수한 생물체들이 함께 관계를 형성하는 풍요로운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기에 어류들이 식물 바이오매스, 해조류, 식물성 플랭크톤 등을 섭취하며 자연산처럼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장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원활한 생태계의 순환으로 자가 재생능력을 갖추면서 수질 정화 기능도 생기게 된다.

아울러 베타라팔마는 유럽에서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민간 조류 보호구역이기도 하다. 250종의 60만 마리가 넘는 새들이 이 양식장에서 물고기를 잡아 먹으며 생활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새들이 베타라팔마 생태계가 건강하다는 증거이자 성공의 잣대가 된다는 것이다. 새들은 충분한 영양분을 잘 섭취할수록 배가 선홍색이 되는데 이 지역 새들의 배는 모두 선홍색을 띄고 있다. 실제로 베타라팔마에서 양식되는 물고기와 알의 20%는 새들의 먹이가 되는데, 언뜻 보면 양식업의 방해꾼이 되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새들이 많이 번식하고 건강할수록 수질이 개선되고 생태계가 원활하게 순환되어 양식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새우와 애벌레 등 생물체의 카로테노이드 색소를 섭취함으로 플라밍고는 핑크빛깔 배를 가지게 된다.
진한 분홍일수록 물의 영양상태가 좋음을 알 수 있다.

황금물고기 : 베타라팔마의 경제적 가치

물고기만 키워 파는 집약적 양식이 아닌 자연과 함께하는 포괄적 양식을 추구하는 농장의 상품은 어떨까? 베타라팔마에서는 매년 2,000톤의 질 좋고 오메가 3가 풍부한 어류가 생산된다. 타 생선보다 높은 가격이더라도 유럽 전역의 유명 식품점과 최고급 요리사들이 직접 양식장을 찾아 물량을 확보할 만큼 인기가 높다.

특히 베타라팔마의 농어는 풍부한 자연산 유기농 플랑크톤을 섭취하며 타 양식어들이 400g 정도가 되면 수확되는 것과 달리 1kg이 될 때까지 3~4년을 자란다. 그 결과, 더 성숙하고 우월한 맛과 영양을 가지게 된다. 높은 풍미 덕분에 스페인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또 다른 음식인 파타니그라햄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한다. 파타니그라햄은 도토리를 먹고 자란 흑돼지로 만든 스페인 특산 햄이다.

다른 양식장의 경우, 1 큐빅 미터 당 40킬로에서 100킬로의 물고기를 양식하는데 좁은 곳에 물고기들이 많을수록 오염과 질병에 노출되기 쉽고, 생선의 빛깔도 어두워진다. 그러나 베타라팔마는 1큐빅 미터당 4킬로 정도의 물고기를 양식하여 건강하고 반짝이는 은빛비늘의 물고기들을 생산하고 있다. 비늘이 중요한 이유는 빛깔도 빛깔이지만 이것이 일종의 스폰지 같은 역할을 하여 불순물이 물고기 몸 내부로 들어가는 것을 차단해주기 때문이다. 베타라팔마의 환경은 풍성한 해초들로 자체 정화 기능이 이루어져 물고기 껍질은 필터링 할 필요자체가 없는 것이다. 자연히 생선의 맛은 달콤하고 깔끔하다. 많은 유명 세프들이 돈을 더 내더라도 베타라팔마 물고기를 선호하는 이유이다.

▲베타라팔마 농어(좌)와 일반양식 농어(우)

이 외에도 베타라팔마에서는 목축업과 농업 또한 이루어진다. 윤환 방목으로 키우는 소들과 말들은 생선과 마찬가지로 농지에서 자라나는 곡식을 먹으며, 화학적 호르몬이 일체 주입되지 않는다. 목축 과정에서 소비되고 남은 유기농 곡식과 쌀은 판매되어 추가적인 이윤을 창출한다. 영양이 풍부한 이 곳 땅에서 수확되는 쌀은 헥터당 8,500kg정도로 비료나 농약 없이도 높은 생산성을 보인다. 아울러 환경관광사업으로 짭짤한 부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하니 양식, 목축업과 농업에 이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아닐 수 없다.

Happily every after? : 베타라팔마의 미래

사실 베타라팔마가 환경을 되살리며 일자리와 이윤을 창출하는 성공 모델이 되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는 여러 시도 끝에 회사와 운영자들의 신념과 인내가 이루어낸 결과이다. 그들은 새와 생선과 플랑크톤을 사랑하는 생물학계의 전문가들이었다. 베타라팔마만의 해피엔딩을 만들어 낼 수 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다른 환경에서도 베타라팔마와 같은 사례를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연구단지에서 환경과 물고기를 더욱 이해하기 위한 끊임 없는 연구를 이어나가고 있다. 자연의 순리를 최대한 잘 활용하여 양쪽에게 이로운 관계를 형성해나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서 어류는 중요한 식량의 원천이기에 양식의 규모는 앞으로 점점 커질 것이다. 유엔세계식량농업기구 FAO(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에서는 2030년에는 거의 대부분의 수산물이 양식물로 대체될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100% 자연산이면 좋겠지만 어느 정도의 인위적인 관리도 필요하다. 특히 요즘에는 자연산 물고기도 기름 오염, 수은 중독에 심지어 방사능에 대한 우려가 있으니 말이다. 때문에 자연산 보다 맛있고 환경에 기여하는 양어장은 어업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생선과의 영원한 헤피엔딩을 위해서는 베타라팔마야말로 본받을만한 성공 사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