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초야우생(草野愚生)이 자연에 묻힌들 어떠하리.
하물며 천석고황 (泉石膏肓)을 고쳐서 무엇하리.
이 글은 조선의 대학자 퇴계 이황 선생의 연시조「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중 한 수이다. 선생이 벼슬을 사직하고, 시골 고향으로 내려와 아름다운 자연산천을 즐기면서 깊이 사랑하는 마음을 노래한 시조이다.
그런데 여기서 ‘천석고황’이란 말이 참 재미있다. 이 말은 ‘연하고질(煙霞痼疾)’과 유사한 말로써 자연산천을 너무 너무 사랑한 나머지, 마치 깊은 병에 걸려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불치병에 이른 상태를 뜻한다.
즉, 산이나 강, 바다와 같은 자연을 떠나서는 한시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그런 경지를 말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천석고황에 걸렸나 보다. 기회가 주어지고 시간만 나면 산으로 바다로 무조건 달려가기 때문이다. 나는 특히 등산을 좋아한다.
그런데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느낀 불미스럽고 못마땅한 점 몇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일반적인 내용이지만, 함께 공감하고 개선 노력했으면 한다.
첫째, 등산로(登山路)가 너무 많다. 산에 길이 많으면 등산하기에 편리한 점도 있겠지만,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난립되어 산이 훼손당하기도 하고, 또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으면 어디든지 쉽게 오염되고 황폐화 되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둘째, 인공적(人工的)인 것이 너무 많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일 때 최대의 가치가 있는 법인데 필요 이상의 인공물을 만들고 있다. 유구한 세월 말없이 그 자리를 지켜온 아름다운 자연산천을 문명 과학이란 미명 아래, 그리고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무자비하게 헐고 깎아 아파트, 위락시설, 터널, 도로 등을 함부로 짓는 행위는 죄악이라 아니할 수 없으며,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씁쓸한 마음 금할 길 없다.
셋째, 매년 발생하는 산불이다. 재앙(災殃)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산불은 이제 우리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해마다 어김없이 일어나는 산불이 얼마나 위험한지 또 그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여기서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산행 중 흡연을 한다거나 취사행위 등은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일이다.
산불의 90% 이상이 담뱃불로 인하여 발생한다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등산객들의 확고한 인식의 전환과 집중적인 단속으로 산불만큼은 철저히 예방되어야 한다. 산행하다 보면 “산불 조심은 산과의 약속이며, 산 사랑의 시작입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더러 보인다.
넷째, 함부로 오염(汚染)시키는 행위이다. 우리는 산에 버려진 유리병, 패트병, 비닐봉지, 음식 찌꺼기 같은 쓰레기나 오물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맑고 깨끗한 자연 속에 무심코 버리는 행위, 이것은 양심을 버리는 행위이다.
우리의 건강을 도모하기 위하여, 그리고 즐겁고 행복함을 추구하기 위하여 산을 찾아서는 더럽히고 훼손시키는 것은 정말 자격 상실이다. 자연 환경을 오염 파괴하기는 쉬워도 복원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5분 만에 오염 훼손시킨 자연, 500년 걸려도 원상복구하기 힘들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
자연산천은 비단 우리 인간만이 사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생명체들이 자연 속에서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생명의 연결고리로 이어진 거대한 생태계를 조직하고 있다. 우리는 자연을 생명의 근원, 더 나아가 거룩한 생명체로 바라보아야 한다. 따라서 그 자연의 한 부분인 우리가 자연산천을 함부로 오염시킨다거나 망가뜨리는 행위는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우리 모두 좀 더 성숙한 문화시민이 되자. 투철한 주인의식으로 환경 지킴이가 되자.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이 땅과 이 터전을 위하여, 아름다운 자연과 쾌적한 환경을 위하여, 우리 훌륭한 환경 지킴이가 되자. 우리가 조금만 더 따뜻한 관심과 사랑으로 자연을 대한다면 우리 금수강산은 더욱 푸르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그리하여 이퇴계 선생이 말한 것처럼 천석고황(泉石膏肓)을 앓아보자. 우리 지금부터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산천을 여한이 없도록 깊이 깊이 사랑하자.
<대원여자고등학교 국어교사 임한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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