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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는 2015년 도입 당시부터 ‘시장 메커니즘을 통한 자발적 감축 유도’라는 이상을 내세웠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규제하는 대신, 기업들이 주어진 배출한도 내에서 효율적으로 감축할 수 있도록 경쟁의 장을 열어주겠다는 발상이었다. 하지만 시행 10년을 맞이한 지금, 제도가 그 본래 취지를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배출권거래제의 기본 구조는 간단하다. 정부가 각 기업에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을 나눠주고, 이를 초과한 기업은 배출권을 구매해야 한다. 반대로 절감한 기업은 남은 배출권을 시장에 팔 수 있다. 문제는 이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제도의 핵심은 ‘가격 신호’인데, 이 가격이 지나치게 낮아졌다는 사실이 제도의 무력화를 상징한다. 최근 한국거래소 배출권시장(K-ETS)에서 거래되는 탄소 1톤당 가격은 8천 원 안팎으로, 유럽연합의 톤당 11만 원대에 비하면 한참 낮다. 배출권 가격이 싸면 기업은 굳이 설비를 교체하거나 감축 투자를 할 이유가 없다. ‘사는 게 더 싸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의 근본 원인은 무상할당의 과도함에 있다. 정부는 산업계 부담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1차 계획기간에는 100%, 2차 기간에는 97%, 3차 기간에도 여전히 90%에 달하는 배출권을 공짜로 나눠줬다. 배출 자체에 대한 비용이 부과되지 않으니, 기업들은 “배출해도 된다”는 신호를 받는다. 제도가 유인을 주기보다 면죄부로 작용하는 셈이다. 결국 감축의 주체가 되어야 할 기업들이 배출권을 ‘거래 가능한 자산’ 정도로만 여기는 풍토가 형성됐다.
시장 유동성 문제도 심각하다. 거래 주체가 제한적이고 거래량이 적어 가격 변동성이 낮다. 산업부문은 여전히 배출권을 남기고, 발전·열생산 부문은 부족분을 사들이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작동하지 않으니 시장은 활력을 잃고, 배출권은 감축 유인을 주는 ‘가격’이 아닌 형식적인 숫자에 불과하게 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언젠가 필요할지 모를 보험’ 정도로만 인식되는 것이다.
국제적 관점에서도 한국의 배출권거래제는 경쟁력이 떨어진다.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본격 시행되면, 한국 기업은 낮은 탄소가격 탓에 ‘탄소 저가국’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수출기업에게 추가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배출권거래제가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 느슨하게 설계된 것이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경쟁력 약화로 되돌아오는 아이러니다.
정책 일관성의 부재도 문제다. 정부는 계획기간마다 할당 비율과 제도 구조를 잦게 조정해왔다. 기업들은 장기 투자 판단이 어려워지고, 배출권은 신뢰할 수 없는 정책 변수로 전락했다. 감축 투자를 장려하기 위한 명확한 신호가 아닌, 단기적 할당 전략만이 남았다. 이는 제도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시장 참여자의 행동을 왜곡시킨다.
이 제도의 근본적인 목적은 ‘탄소 감축의 비용을 사회 전체가 합리적으로 분담’하는 데 있다. 그러나 현재 구조는 일부 대기업에게 무상할당 혜택을 주고, 실질적인 감축은 중소기업이나 발전부문에 전가하는 결과를 낳았다. 시장이 공정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배출권 가격이 실질적인 감축 투자보다 싸서는 안 된다. 지금처럼 톤당 1만 원 미만의 가격으로는 의미 있는 기술투자가 일어날 리 없다.
기후위기는 계산상의 감축이 아닌 실질적인 변화만을 요구한다. 배출권거래제가 다시 제 기능을 찾기 위해서는 정치적 타협이나 산업계의 반발을 넘는 근본적 개편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값싼 탄소, 값싼 책임으로는 결코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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