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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이 국가 재난 선포까지 하게 된 이번 가뭄은 단순한 지역 뉴스가 아니다. 저수율이 15% 밑으로 떨어지고, 가구와 호텔, 상가의 수돗물이 줄줄이 끊기는 상황은 대한민국이 기후위기 시대에 얼마나 무방비 상태로 서 있는지를 보여준다. 소방차와 군함, 헬기까지 동원해 물을 나르고 있지만, 이 모든 장면은 ‘응급 처치’에 불과하다. 구조적 대책 없이 매번 가뭄이 닥칠 때만 반짝 대응하는 관행은 이제 멈춰야 한다.
물 부족은 갑자기 생긴 문제가 아니다. 기상청과 환경부는 이미 수년 전부터 우리나라가 물 스트레스 국가라는 경고를 내놨다. 강수 패턴은 불규칙해지고, 비가 내려도 짧은 기간에 집중되는 경향이 심해졌다. 산악 지형이 많은 특성상 빗물을 저장하는 능력은 떨어지고, 개발로 인한 불투수면 확대로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비율도 낮아졌다. 이 구조적 취약성을 방치한 채, 여전히 평년 강수량 통계를 기준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는 현실이 문제다.
이번 강릉 사태가 특히 심각한 이유는 ‘예상 가능성’이 높았음에도 대비가 부실했다는 점이다. 저수지와 댐 관리 체계는 평상시 물을 가득 채워두는 것에만 맞춰져 있었다.
장기 가뭄이 이어질 때 사용할 수 있는 비상 취수원 확보, 사수위 이하의 ‘죽은 물’을 활용할 수 있는 기술적·법적 준비, 가뭄 단계별 물 배급 체계 등은 사실상 미비하다. 기후변화가 일상화된 시대에 이런 인프라 구조는 그대로 위기를 재생산한다.
대응은 더 이상 지자체의 역량과 의지에만 맡길 수 없다. 국가 차원의 통합 수자원 관리 시스템이 시급하다. 댐·저수지·하천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관리하고, 위성·기상 데이터를 활용해 가뭄 예측 정확도를 높여야 한다. 여기에 가뭄 취약지역을 세분화한 지도와, 해당 지역별 맞춤형 공급 계획이 병행돼야 한다.
물 절약 캠페인도 중요하지만, 정책의 중심은 절약이 아니라 ‘확보’와 ‘관리’에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빗물 저장 시설과 재이용 시스템을 의무화하고, 농업용수 공급 효율을 높이는 기술에 대한 투자도 늘려야 한다. 도심 빌딩과 대단지 아파트가 빗물과 중수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강화하면, 위기 시 생활용수 압박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또한 물 관리 정책은 단발성 예산 집행이 아니라 장기 계획과 법제화가 필요하다. 가뭄 대응 예산은 재난관리기금에서 일시적으로 끌어다 쓰는 구조를 벗어나, 상시적 예산 편성과 관리 기구를 통해 집행돼야 한다. 물 공급망을 지탱하는 핵심 시설의 노후화 점검과 교체 주기를 법으로 규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국민 인식 변화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강릉 사태처럼 눈에 보이는 위기에서만 관심이 집중되고, 위기가 끝나면 잊혀지는 구조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물은 전기가 끊기는 것보다, 인터넷이 끊기는 것보다 더 빠르게 사회를 마비시킨다. 그 중요성을 상시적으로 환기하고, 학교 교육과 지역사회 프로그램 속에 ‘물 감수성’을 심어야 한다.
이번 가뭄은 명백한 경고다. 앞으로 이런 위기가 더 자주, 더 길게 올 가능성이 높다. 지금처럼 가뭄이 닥치면 헬기를 띄우고, 군함을 보내고, 비상 급수차를 동원하는 방식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필요한 것은 위기 발생 전부터 작동하는 시스템이고, 모든 국민이 그 시스템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뒷받침하는 사회적 합의다.
물 부족을 자연재해로만 볼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국가가, 지자체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한다. 준비하지 않는 사회에, 기후위기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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