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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국정감사가 시작됐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은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장관 해임 건의안 의결에 반발해 대부분 불참했다.
이 기회를 빌려 ‘국정감사’란 무엇인지 되짚어 보고자 한다. 영국의 국정감사는 전범을 찾아내기 위한 조사단을 결성한 일에서 시작된다. 가톨릭 교도인 제임스 2세가 영국
의 주류인 성공회와 청교도를 압박하기 시작하자, 가톨릭과 성공회와 청교도사이의 알력다툼이 발생하였고 청교도가 장악한 의회는 원수가 됐다.
제임스 2세의 왕권 강화와 청교도 탄압에 권력위기를 실감한 영국의회는제임스 2세의 맏딸인 메리 공주와 결혼한 네덜란드의 윌리엄 공에게 “영국왕위를 넘겨 줄테니, 영국으로 어서 와라”는 서신을 날린다.
오렌지 공 윌리엄은 신교파였기에가톨릭을 반대했고, 영국이 가톨릭 체제를 밀어 붙이면 바로 옆에 붙은 네덜란드가 종교적 경제적인 탄압을 받게되는 것을 예측해 영국의회의 소환을 받아들이게 되며 이로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이 명예혁명이다. 이로서 윌리엄 3세가 즉위하게 된다.
명예혁명을 통해 제임스 2세는 폐위되지만, 1689년 3월 아일랜드에 상륙해 가톨릭교도와 연합해 유혈사태를 일으키게 되고, 이후 여러 형태의 전쟁이 벌어지게 되어 이에 대한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전쟁수사단을 구성한 것이 국정감사의 시초이다.
미국의 경우, 국정감사란 제도가 없다. 영국의 식민지 13주였던 시절에는 영국의 제도를 따라 조사만 하고, 처벌을 할 수 없었는데 미국 독립전쟁을 거치며 자잘한 비리가 많이 도출되고 책임문제 규명을 위해 국정감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막 독립해 국가로 틀을 갖춘 미국은 국정감사와도 같은 강력하고도 부정기적인 정치행세를 할 여유가 없었기에 헌법에서 국정감사에 대한 개념을 뺴버리는 대신, 상시청문회제도를 정착시켜 사실상 매일매일 국정감사를 진행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여러 정황상 영국식 국정조사의 안티테제이자 미국형 국정감사로 추진된 상시청문회제도는 초기에 정치적인 매장수단으로 악용되었지만, 꾸준히 제도의 투명화와 개선이 이루어져 근대에 이르러선 미국의회의 일상적인 업무로 인정받게 되었고 특정사안에 대한 국정감사를 시작 할 경우 수사본부를 의원들이 직접 설치하고 공표하는 등의 보완이 이루어져 1921년 감사원(GAO)가 만들어지게 되며 상설청문회 시대를 열게 된다.
한국의 경우 미국식 국정감사의 장점을 뽑아, 기획형 국정감사제도를 만들게 되었는데 이것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만이 추진하는 제도이다.
제헌헌법 초안에는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상시청문회제도와 국회의원들이 상시청문회제도를 악용할 것을 대비한 의회수사기관인 감사원이었는데, 제헌헌법의 제정에 참가한 사람들이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감사원의 설립을 반대함으로 인해 감사원이 대통령 휘하의 기관으로 변경된다.
결국, 영국식의 국정조사와 미국식의 청문회가 결합되면서, 주도기관이 지정한 기간 내에 1년치 감사를 몰아서 하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기획형 감사제도가 만들어지고 말았다. 그렇지만 국회의원이 가지는 가장 강력한 권한이 바로 국정감사권한이다.
새로운 문젯거리들이 쏟아져 나오고있는 마당에 국정감사 참여를 거부할 만큼의 명분이 지금 새누리당에는 없다. 또한 새누리당은 이정현 대표가 단식중단을 선언하고 국감복귀를 권유했음에도 국감을 거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금의 새누리당이야 말로 국정감사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