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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에 이어 독성물질과 유사한 성분이 공기청정기와 에어컨 필터에서 대거 검출됐다는 정부의 발표에 국민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허나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 같은 일은 형태만 바꾸어 계속 반복되어 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빅토리아 시대, 약 1860년대 영국에서 갑자기 아이와 노인, 병자들이 집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일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멀쩡하던 아이들이 시름시름 앓다가 목숨을 잃었지만 의사들도 정확한 사인을 판단하지 못하고, 희생자는 꾸준히 늘기만 했다.
오래지 않아 살인자의 정체가 밝혀졌다. 살인자는 벽지였다. 특히 강한 녹색 색소를 다량으로 사용한 것들이 문제를 일으켰다. 이 녹색 색소의 주성분은 독성물질도 아닌 그냥 독. ‘비소’였다. 이 녹색은 당시 벽지 회사들도 디자이너들도 가장 강력하게 추천하던 색상이었고, 유행의 첨단이었기에 사람들도 앞 다투어 사서 발라대던 물건이었다. 말 그대로 사람들이 살인자를 집집마다 알아서 들여놓았다. 1858년만 해도 1억 제곱마일에 달하는 '살인 벽지'가 발라져 있었다.
게다가 병에 걸릴 때 당시 의사들이 하던 처방이 사태를 부추겼다. 집에 가만히 누워서, 바깥 공기를 최대한 덜 마시라고 했다. 최대한 독을 많이 마시라는 말과 같은 말이었다.
벽지가 원인으로 거론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지만, 문제는 벽지 회사들이 로비를 통해 어떻게든 이 문제를 덮으려 했다. 따라서 규제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몇몇 회사들은 '이건 혀로 핥아도 안전하다'며 항변하기도 했고, 비소는 직접 마셔야 위험하지 기체상태에서는 안전하다는 헛소리를 하기도 했다. 사람들의 비난 여론이 강해지자 녹색 벽지에 '비소가 들어있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를 인쇄해서 팔기도 했다. 비소가 든 벽지에 말이다. 벽지뿐만 아니라 비소는 옷을 염색하는데도 쓰였다. 독 드레스를 입고 다닌 셈이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고 결국 언론 등을 통해 문제가 보도되기 시작했지만, 규제에는 수십 년이 걸렸다. 그나마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녹색의 인기가 급격히 떨어지고 업체들도 비소 사용을 어쩔 수 없이 줄이게 됐지만, 1890년대까지도 비소를 색소에 쓰는 것에 대해 규제는 없다시피 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이번 에어컨 필터 독성물질 검출 사건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옥틸이소티아졸론(OIT)는 애경 가습기 살균제에 들어간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 계열의 독성물질이다. 입으로 먹거나 피부에 닿으면 유해하며, 어류 등 수생환경에도 유해해 2014년 유독물질로 지정됐다. 가전업계가 이번 사건에 대해 적극 대응에 나서는 반면, 정작 유해물질의 발원인 필터를 만든 3M은 소극적 대응에만 나서고 있다.
3M은 각종 필터를 포함해 의료와 사무용품 분야에서 6만 5,000개의 제품을 만들며 지난해 35조원의 매출을 올린 글로벌 기업이다. 폭스바겐과 옥시에 3M까지, 글로벌 업체 발 환경 문제가 연이어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필터는 법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에어컨과 공기청정기 제품 자체는 전기용품 안전관리법에 등 산업통상자원부 소관법의 관리를 받는데 부품인 ‘필터’에 대한 규정은 없다. 필터는 환경부가 관리하는 방부제, 방충제 등 15종 위해화학물질 제품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독성물질 관리에 있어 빅토리아 시대의 국가 시스템과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적인 국가 시스템이 별반 다르지 않다면 매일 수만 가지의 신제품이 새롭게 개발되는 지금의 상황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나 독성 에어컨 필터 사건과 유사한 일들은 언제든지 반복될 것이다.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서 보여주었던 허술한 작태를 두 번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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