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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걷는 길’ 조성, 정부가 우선 소통하라
2012년 10월 22일 (월) 13:10:38 편집국. webmaster@ecolaw.co.kr

2007년 지리산 둘레길과 제주 올레로가 알려지면서 걷기 열풍이 전국적으로 불기 시작했다. 국민들이 열심히 걷기 시작하자 정부도 덩달아 걷는 길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한 환경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정부 부처에서 조성한 길은 약 500곳이나 된다. 올레길, 둘레길 열풍 이후 4~5년이 지나는 동안 500곳이나 되는 길이 국토에 생겼다니 놀라운 일이다. 걷기는 국민 건강을 생각할 때 환영할 일이다. 또한 국민의 열망에 부응해 500곳씩이나 길을 조성한 정부의 발 빠른 조치도 반갑다.

그런데 걷는 길을 직접 가보면 정부의 조치가 결코 반가워할 일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경북 문경시에 조성된 ‘선유동천 나들길’에는 잡초로 무성한 구간이 눈에 띈다. 광주 서구의 ‘영산강 서창포구 탐방로’의 길 진입로에는 길조성을 위해 베어놓은 나무들이 오랫동안 방치돼 있다.

경북 울진군의 불영계곡로에서 36번 국도 가드레일 바깥쪽 시멘트길은 조심해야 할 길 중 하나다. 고속으로 달리는 차 옆으로 한 사람 겨우 다닐만한 ‘걷는 길’이 있고 길과 도로 사이를 막는 건 키 작은 가드레일뿐이다. 척 봐도 위험하다.

길에는 위험만 있는 게 아니다. 같은 길을 놓고 부처별로 지은 이름이 중복 지정돼 있다. 영주시의 한 걷는 길을 행안부에선 ‘풍기인삼개삼터길’, 문광부에선 ‘소백산자락길’이라 지칭했다.

또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부르는 이름도 가지각색이다. 부산과 강원도 고성간의 길을 문광부에선 ‘해파랑길’, 지자체에선 ‘부산 갈맷길’이라 정했다. 이런 상황이니 관광객들이 혼란에 빠지고 국가 트레일의 위계가 무너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걷는 길 조성과는 거리가 먼 부처가 길을 조성한 경우도 있다. 공무원 인사, 치안, 재난방지를 주업무로 하는 행전안전부가 1km 당 평균 8천 2백만 원을 써가며 ‘명품녹색길’을 조성한 이유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정부 부처들은 길을 조성하면서 최대한 자연상태를 유지하고 친환경적으로 설계해야 하지만 그 일은 뒷전이고 데크로드, 전망대, 화장실, 편의시설 등 시설물 설치에만 신경을 썼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걷는 길이 중복 조성되다 보니 예산도 중복됐다는 점이다. 즉 안 써도 되는 곳에 돈을 쓴 셈이다.

돈은 돈대 쓰고 홍보는 홍보대로 못했다. 국토해양부가 전국의 해안을 U자형으로 묶어 조성한 ‘해안누리길’은 몇몇 지자체를 제외하고는 해당 길이 해안누리길로 지정된 것조차 모르는 지자체가 70%이상이다. 환경부는 ‘국가생태탐방로’라고 야심차게 준비했지만 그 위상에 걸맞는 ‘홈페이지’조차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부처들은 길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관리·운영의 책임은 모두 지자체에 떠넘기는 실정이다.

올 7월엔 제주 올레길에서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명품길이라 불리며 비교적 사람이 많은 올레길에서도 사고가 나는데 우후죽순으로 생긴 길에서 사고가 안 일어날리 없다. 길은 500개나 생겼지만 ‘마음놓고’ ‘마음껏’ 다닐만한 만할 길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길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소통이다. 국민이 걷고 싶은 길은 가는 도중 땀을 식혀줄 시원한 바람이 지나가고 멈춰서면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볼 수 있는 소박한 길이다. 사고의 걱정 없이 함께 걷은 이들과 한담을 나눌 수 있는 안전하고 한적한 길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무분별하게 추진중인 걷는 길 조성을 멈춰야 한다. 걷는 길이 소통인 것처럼 정부도 우선 서로 소통해서 함께 길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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